대한민국의 저성장의 정치적 원인과 해결법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온 만큼 모두 새해 목표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 병신년이 지나갔지만 2017년 정유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면서 쉽지 않은 한 해가 예상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고, 경제불황이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률은 나날이 높아져만 가고, 기업들은 실적 부진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월 100만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자영업자 수는 70만을 넘어서 80만을 바라보고 있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무능한 박근혜 정부는 나라를 더 큰 혼란으로 안내했고, 혼란스러운 정국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삼성전자의 부진한 실적? 조선 및 해운업계의 침몰? 실업률 상승으로 인한 내수 부진? 이러한 이유보다 예전부터 이어져 온 착취적인 제도가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가장 정확할 듯 싶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정치적인 이유로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한국 식민통치도 막을 내렸습니다. 이때 우리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나뉘었고,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맡았습니다. 서로 다른 이념이 대립하던 남북은 결국 북한의 선공으로 6.25전쟁이 발발했고, 남북은 서로 너무나도 상반되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남한의 생활 수준은 포르투갈, 스페인, 등과 비슷한 반면에 북한의 생활 수준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두 나라의 경제적 격차는 거대하며, 앞으로도 북한이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한 이 격차가 좁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남북의 격차는 왜 생겨났을까에서 대한민국의 저성장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제도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 흔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서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생겨났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남한도 분단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다. 다만, 분단 이후 남한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경제를 택했지만 북한은 사유재산을 불법화하고 시장 역시 금지했다(김정일과 그의 가족들은 예외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제도적인 차이가 크나큰 격차를 만들고 번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제도적 문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으로 돌아가서 살펴보고자 한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객관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평가하자면 대한민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불러온 독재자이다. 조금 더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착취적인 정치제도를 펼쳤고, 부분적으로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펼쳤던 정권이다. 착취적이라는 말은 중세시대의 봉건제도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소수의 엘리트층이 과세, 벌금을 통해서 소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착취적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포용적이라는 말은 차별 없이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어느 한 소수의 집단이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은 정치제도도 착취적으로, 경제제도도 착취적으로 펼쳤고 지금도 그러고 있기에 발전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박정희 정권은 권위주의적인 정부 권력을 사용해서 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MIT 경제학과의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 (Daron Acemoglu)는 이러한 착취적 정치제도를 통해서 경제성장이 가능한 경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엘리트층의 통제가 가능하고 생산성이 높은 활동에 자원을 분배하면 성장이 가능하다. 1900년대 소련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소련의 경우 정치 및 경제 제도 모두 착취적이었지만 중앙정부가 권력을 사용해서 농업에서 공업으로 자원을 재분배하는 ‘제1차 경제 5개년 계획’을 펼침으로써 한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강대국이 될 수 있던 것이다. 두번째는 어느 정도 포용적 경제제도를 허용하는 상황에서는 성장이 가능하다. 위에서 필자가 박정희 정부가 부분적으로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펼쳤다고 한 것이 이 뜻이다. 완전하게 자유시장 경제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재벌기업들에 세금혜택, 보조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기술 개발, 인적 자원 개발, 등에 힘쓰게 한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의 소련처럼 이러한 경제성장 모델은 한계점에 부딪쳤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는 대한민국의 착취적인 정치제도의 민낯을 드러내었다.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을 자처하던 정치인들에게 보수는 단지 그들의 권력이 재분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기존 제도를 유지하려 하였고, 이러한 기존 제도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내치거나 종북으로 몰려 착취적 정치제도를 유지해나갔다. 1970년대 재벌기업들을 앞세워서 부분적으로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펼쳐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불러온 박정희 정권의 향수를 잊지 못해서 아직도 착취적인 제도를 펼치고 있기에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정책적 실패는 일시적인 고통만 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농노들을 갈취하던 착취적인 제도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빠져나오기 힘든 늪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착취적인 제도로 인해서 콩고, 캄보디아, 등 많은 나라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저성장의 원인은 박정희 정권때부터 이어져 온 착취적 제도가 이제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번째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말했던 보수정책과 진보정책의 혼합이다.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잣대로 흔히 대북정책을 많이 사용한다.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면 진보,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면 보수라는 잣대를 사용한다.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다. 대북정책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잣대가 되면은 다른 나라들은 도대체 무슨 잣대를 사용해야 하나? 진보도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수도 있고, 보수도 우호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즉, 상황에 맞게 보수정책과 진보정책을 혼합해서 펼쳐야 한다. 두번째는, 강력한 규제를 통한 부정부패 척결이다. 공자, 애덤 스미스, 장 자크 루소 모두 국가에 관한 다른 철학들을 펼쳤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국가는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같은 정책이라도 시대, 국가,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서 실패할 수도 또는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권은 망한다. 역사도 증명했고,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서 현재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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